카자흐스탄의 전쟁영웅 Әлия Молдағұлова (엘리야 몰다구로바) 에 대해 아라보자
전형적인 카작 시골 여자다
카작어로 된 알리아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구 광장 한가운데 알리아의 동상이 있다. 특이한 사실은 거의 1년 내내 추도의 꽃이 없는날이 거의 없다. 가장 인기있는 추도 장소이기도 하다. 판필로프 공원의 꺼지지 않는 불꽃 처럼 전쟁영웅들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악토베 출신의 카자흐 인이다. 어렸을때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되어서 삼촌을 따라 상트 째쩨부르그로 이동해서 살았다. 삼촌이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영향을 받은걸로 보인다. 그곳 고아원에서 학교를 마친 후 1942년 10월 7일 항공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3개월 후 그녀는 붉은 군대로 자원입대하고 전방으로 가기를 희망한다. 같은년도 12월 21일 그녀는 공식적으로 군 입대를 사유로 하여 대학에서 자퇴하게 된다.
소련육군 독립 54소총여단 소속 알리야 몰다구로바는 소련육군에서 최초 수송부대원으로 1942년부터 복무하였으며 44년 저격수훈련을 수료하고 54여단에 배속되어 임무수행중 1944년 여단이 노보소콜니키 인근 철도에서 독일군의 매복공격을 당했을때 저격뿐만아니라 근접전투도 벌여 91명을 사살 하였다.
1944년 1월 14일 지뢰에 의해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근접 전투를 하였고 한명의 독일군과 독일 장교를 사살하였으나 근접전의 치명상으로 사망하였다. 그녀는 18살의 어린 나이에도 군에 자원입대하여 (입대할 당시 16살) 저격수로 활동 하였으며 굉장히 용감하였다고 전해진다
카자흐스탄에서 여전히 가장 유명한 전쟁 영웅중 한명이다.
이 후 그녀의 이름을 딴 거리와 학교가 생기고
엘리야 라는 이름이 여성들에게서 유행이 되기도 한다.
카자흐스탄 여자들은 한국 기준으로 좀 괄괄한 (용감한) 편인데 아마도 이러한 배경에는 이런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적극성이 배경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카자흐 여자가 한국 남자 정도의 괄괄함이고 남자는 훨씬 더 많이 마초스럽다)
1977년 불릴때의 영상이다 (카작어이다)
최근 불린 영상이다. 카자흐스탄 인기 가수 로자 름바에바의 노래 제목중 알리야를 기리며 부른 노래가 있다. 바트르 크즈 엘리야.
위대한 전사 알리야
바트르 크즈 센 할크능
조국의 위대한 전사 국가행사때 꽤나 자주 불리고 전승기념일에는 2번째 3번째 순서에는 거의 꼭 불린다.
http://e-history.kz/en/biography/view/197 http://en.wikipedia.org/wiki/Aliya_Moldagulova